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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곰나라
작성일 2013-04-08 (월) 14:45
ㆍ추천: 0  ㆍ조회: 753      
IP: 112.xxx.198
차가 필요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는 이응호라고 합니다. 1969년 가을, 충북 단양의 매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9살까지 아무 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뇌성마비라고 부르던,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온 몸을 버둥거리며 기어다니는 방안 정도가 세상 거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10살쯤 되자, 화물차 일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차에 태워 세상 구경을 시켜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이 산 속인데다가 당시에는 도로사정이 좋지 못해 몸이 불편한 저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셨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성 덕분에 몇 년에 걸쳐 전국 각지를 누비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 꿈은 장애가 있고, 장애가 심하지만 언제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가 몰고 다니는 차보다 더 큰 차를 몰고 세계를 누비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상태로는 불가능해보이는 꿈이었지만, 진심으로 실현하고픈 꿈이기도 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배움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중증장애인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무작정 어머니께 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습니다. 12살이었습니다. 장애가 심한 제가 갈 수 있는 학교도 없었는데, 매일매일 학교에 보내달라고 조르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어머니는 고집을 부리는 저에게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지나서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타이르시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갈만한 학교가 있는지 여기저기 수소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충주에 저와 같은 장애인을 학생으로 두는 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방문해보니, 나이 많은 학생도 받아준다고 하여 마침내 충주 숭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돌봄 속에서 살다가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내 꿈에 한발짝 다가간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설레는 입학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14살에 초등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숭덕학교를 다니는 동안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운동을 시작해서 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수상하기도 하고, 자원봉사 대학생과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운전면허에도 도전했습니다. 89년에 처음 면허시험장에 갔는데, 장애가 너무 심해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전할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아쉬웠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숭덕학교에서 중학교까지 졸업-당시에는 고등학교과정이 없었습니다.-하고 단양 집으로 돌아와보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제 몸으로 직장으로 다닌다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고, 중졸의 중증장애인인 저를 채용해 줄 곳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고향에 공판장을 냈습니다. 공판장을 운영해보니 물건 배달할 일도 있고, 은행이나 관공서도 출입해야 하는데 이동이 너무 불편하였습니다. 장애인연금, 메달리스트 연금을 2년 동안 모아 바퀴가 셋 달리고 뒤에 짐칸이 있는 오토바이를 구입했습니다. 물론 비장애인들의 몸에 맞게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제 몸에 맞추어 수리를 해야 했습니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고치고,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발로 밟을 수 있게 하고 발판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면 간혹 나를 비장애인으로 보는 사람도 생겼는데,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저렇게 심한 장애인이 운전을 하고 다닌다고 놀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할 곳,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개를 단 듯 이곳저곳을 행복하게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나면 온 몸이 너무 아파 여러번 심하게 앓곤 했습니다. 바퀴가 세 개라 핸들도 힘으로 돌려야했고, 아무리 당겨보았자 시속 70km가 넘지 않았지만 오토바이에 올라가면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 힘껏 당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 배달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러 다니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숭덕학교 동기동창인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청주에 사는 후배가 버스터미널까지 왔는데 그 친구를 자기가 사는 집까지 데려다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제 친구 역시 중증장애인인데 마중은커녕 집 밖에 나오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가끔 저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는 했습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하얀 얼굴에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그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후배였지만 마음이 여린 소녀였는지 일찍 기숙사를 떠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간 터라 수년만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여리고 어린 소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친구 집에 태워다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그 때 저는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날의 인연을 시작으로 해서 그녀는 저의 아내이자, 제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결혼은 포기했다는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기까지 구절구절 사연이 많았습니다. 저는 1급장애인, 그녀는 2급장애인(아내는 출산을 하다가 장애가 심해져 지금은 1급장애인 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딸을 포기하지 않고 키우고 사랑하고 지지해주신 부모님도 선뜻 축복해주시지 못한 결혼이지만 그녀와 함께 살며 사랑하며 가끔은 다투고 부대끼며 사는 결혼생활이 저에게는 천상의 행복에 다름 아닙니다.

 

결혼을 하려고 보니 그녀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꼭 따야한다는 생각이 어린 시절의 꿈을 넘어 생활 속에서 절박하게 다가왔습니다. 학생일 때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법이 개정되어서 장애인도 응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적성검사는 잘 보았지만 필기시험에서는 20회나 낙방을 했습니다. 손이 떨려서 오답처리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재도전을 거쳐 2001년에 면허증을 땄습니다. 중증의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새 차는 구입할 여력이 없어서 중고 승용차를 한 대 마련했습니다.

 

결혼을 했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는 아이를 둘 낳았습니다. 출산 때문에 아내는 장애가 심해졌지만 아이들은 장애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혈기왕성한 아들들은 지금 한창 장난꾸러기인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평소에는 전동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지만 트렁크에는 수동휠체어를 한 대 실을 수 있을 뿐입니다. 아내와 함께 한 차를 탈 수 있는 때는 저상버스를 탈 때 뿐이지만, 노선도 많지 않고 제 고향에는 아직 도입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휠체어를 두 대 싣고 다닐 수 있는 차량이 필요하지만 가정형편상 중형차 구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도 다니고 싶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동네산책을 하는 정도 밖에 해 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픈 때가 많습니다.

 

 


 

저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희가 말은 할 수 있는지 생각은 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만, 저희가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고자 노력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싶은 날도 있고, 급하게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날도 있고, 가족과 함께 부모님 댁이나 형제자매의 집을 방문하는 날도 있고, 장을 보거나 나들이를 가야하는 날도 있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개인에게는 차를 기증을 하는 경우가 없고. 현재 현대자동차()만 공동모금회로 차를 주고. 공동모금회에서 각 단체로 기증 하고 있지만. 개인에게는 차를 기증을 해 주는 대기 없습니다. 저는 차가 필요합니다. 저에게 차를 기증 해 주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크나큰 영광이겠습니다.


 

저는 장애가 있거나 없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며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평범하지만, 저에게는 도전의 연속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의지는 충만합니다. 10여년 운전을 하면서 무사고운전이라는 실력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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